하수인 검거되면 새로 편성 … '15명 전원 실형' 사건도 총책 못 잡아

대대적인 단속에도 보이스피싱 범죄가 끊이지 않고 있다.

범죄조직이 외국에 본거지를 두고 국내 하수인들이 붙잡혀도 다른 사람들을 포섭해 범행을 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점차 조직화·지능화되고 있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21일 법원에 따르면 최근 보이스피싱(사기) 혐의로 기소된 15명 전원이 무더기 실형 선고를 받았다. 광주지법 형사1단독 최현종 부장판사는 사기혐의 등으로 기소된 최 모(여)씨에 대해 징역 7년을 선고하고 임 모(여)씨 등 14명에 대해서는 징역 1~5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기소된 15명 전체가 실형을 선고받은 것은 이례적이지만 수사기관은 외국에 있는 총책 박 모씨와 주요 조직원들을 검거하지 못했다. 이 사건은 박씨와 내연관계에 있는 최씨를 처벌하는 것으로 끝났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3곳에 사기단 조직 = 박씨는 중국과 베트남, 필리핀 등에 보이스피싱 사기단을 조직해 광범위한 범행을 벌이고 있다. 박씨는 해당 국가마다 전화유인책 사무실(속칭 콜센터)를 만들고 나라별 총책을 두고 그 아래에 '지역사장'을 뒀다.

지역사장들은 전화유인책(속칭 텔레마케터)과 대포통장 확보책, 인출책 등 조직원 등을 뒀고 박씨는 조선족 등으로부터 입수한 개인정보를 이들에게 보내 범행을 하도록 지시했다.

검거된 최씨는 박씨와 내연관계로 광주에서 화장품판매업을 하고 있었다. 최씨는 박씨의 지시하에 텔레마케팅 매뉴얼 등을 제작해 피해자들의 다양한 반응에 따른 대처방법과 기망수법을 교육했다. 최씨는 전화유인책들을 직접 관리·감독했다.

최씨는 전화유인책들에게 금융기관 직원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대출 사기를 지시했다. 대출을 받으려면 인지세와 선이자가 필요하다고 속여 입금을 유도했다. 최씨는 이같은 수법으로 5367회에 걸쳐 총 1456명으로부터 35억여원을 송금받았다. 최씨의 최측근인 임 모씨도 같은 수법으로 2125회에 걸쳐 15억원 상당의 돈을 챙겼다.

하지만 이 사건의 총책인 박씨와 나라별 총책인 김 모씨, 지역사장으로 불리는 전 모씨와 권 모씨, 임 모씨 등은 모두 검거되지 않았다. 박씨의 동서로 필리핀에 상주하면서 대포통장을 확보해 사기단에 제공하는 또 다른 김 모씨도 마찬가지다. 박씨의 친동생도 중국에 거주하면서 중국본부장을 맡고 있지만 수사기관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

◆조직간 연계성 의혹도 = 금감원 관계자는 "중국 등 외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아 국내에 있는 하부조직을 검거해도 보이스피싱을 뿌리 뽑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외국 사법당국과의 공조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세 나라에 조직을 거느린 박씨 사건에서 주요 간부로 이름이 언급된 김 모씨는 지난해 유죄 선고를 받은 송 모씨 사건에서 중국내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관리자로 등장한다.

송씨는 김씨의 보이스피싱조직에서 피싱콜센터 5팀장을 맡았다. 팀장의 역할은 팀원들을 관리하는 것뿐만 아니라 팀에서 전화한 1주일치 실적을 정리해 그 윗선인 사장단 서열의 관리자에게 보고하고 쉽게 속지 않는 난이도 있는 피해자들에게 전화를 해서 돈을 받아내는 것이다.

송씨는 피싱책으로 일하다가 약 한달 간 자신의 가명을 딴 팀을 만들어 팀장으로 역할을 했다. 그는 295명에 달하는 피해자들로부터 22억원을 편취한 혐의로 기소돼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이 사건 보이스피싱 조직안에 사장별로 여러 라인이 있고 그들의 범행수법이 모두 동일하지 않다"고 말해 대규모 조직이 연계돼 범행을 주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보이스피싱 총책은 하부조직이 검거되면 다시 새롭게 팀을 짜고 처벌받은 사람들은 다시 범행에 뛰어들고 있다. 검거도 중요하지만 제도적 대응이 필요한 이유다.

최 모씨와 김 모씨는 보이스피싱 범죄에 가담했다가 지난 2013년 9월 사기죄로 각각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곧 이어 이들의 추가 범행이 드러났다. 두 사람은 보이스피싱 조직의 인출책을 맡았다. 이들은 타인의 카드를 소지하고 있다가 중국측 총책의 지시를 받고 통장에서 돈을 인출했다. 법원은 이들에게 각각 2개월의 실형을 추가했다.

◆처벌받아도 다시 범행 나서 = 김 모씨는 보이스피싱 범죄를 저질러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상황에서도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편취금액 규모가 적고 4300만원을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했지만 법원은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홍 모씨도 보이스피싱 범죄로 구속기소됐다가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지만 다시 범행을 저질러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범죄단의 총책을 잡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해 단순가담자도 엄벌에 처하고 있다. 인출·송금책에 대해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한 재판부는 "보이스피싱이 점조직 형태로 운영돼 범인의 발견과 체포가 쉽지 않은 구조적 특징을 가지고 있다"며 "이러한 특성과 현재의 수사여건에 비춰 하위 조직원들을 엄벌해야 할 필요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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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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